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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연기 중 악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마치 진짜 검사인 것 마냥 뛰어난 연기를 펼쳐왔던 배우 곽도원. 지금은 탑급 연기자로 위치해있으나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개고생하며 힘들에 올라온 자리라고 하죠.


이러한 그가 영화와 함께 여러 방송에 출연하면서 다시 주목되고 있어 배우 곽도원에 대한 모든 부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목차-

■ 곽도원 어떤 배우며 출연 영화들은?

■ 곽도원 프로필

■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청각장애가 된 이유

■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시작 된 극단 생활

■ 죄인이라고 불리는 이유

■ 쌓아왔던 연기력이 드디여 빛을 발휘하는 순간

■ 장소연의 고백 이후 연인사이가 되었으나 결별


■ 곽도원 어떤 배우며 출연 영화들은?

먼저 어떠한 연기자인지 출연작들과 함께 간략히 살펴본 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할게요. 우선 곽도원은 1973년 고향 서울 광진구 능동에서 태어나 1992년 극단에서 창극배우로 데뷔하여.


그동안 '햄릿', '사명대사', '유령극단' 외 수 많은 연극을 거친 뒤 드라마 '유령', '굿 닥터'...와 영화 '황해', '범죄와의 전쟁', '곡성', '남산의 부장들', '강철비2', '국제수사' 등등 대중적인 작품에 출연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게 되면서 동시에 연기 잘하는 배우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 곽도원 프로필

본명 곽병규

생년월일 1973년 5월 14일 생으로 곽도원 나이 만 47세

키 180cm

최종 학력 광남고등학교

소속사 마다엔터

종교 불교

그 외에 인스타그램 사용함.


■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청각장애가 된 이유

조근조근하면서 개성이 확실한 말투 그리고 큰 풍채로 악역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곽도원. 과연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을까?

우선 어릴적 그는 6.25 참전용사이자 다리에 장애를 가진 예비역 육군 중사 아버지와 지체장애의 몸을 이끌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던 어머니 밑에서 본명인 곽병규로 태어나 굉장히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로 자라게 되는데요.


얼마나 소심했었냐면 초등학생 때 친척들이 집에 놀러오면 부모님이 항상 노래를 시켰었고 워낙 숫기가 없었던 탓에 노래를 시키면 늘 울음을 터트렸을 정도 였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추후 극단 생활하면서도 나타나게 되고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왕따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라던 중 열병을 앓으면서 한 쪽 청력을 잃게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한 쪽 귀로만 듣는 줄 알았었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되고나서야 이 부분이 장애라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탓에 그는 제주도에 있는 집에서 서울로 갈 때 마다 항공비가 50% 할인이 된다고 하는군요.)


이렇듯 한 쪽 귀가 들리지 않고 소심한 성격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던 중 광남고등학교 2학년 때 교회 누나를 따라가서 연극 '품바'를 보게 되는데 이 연극을 본 다음날부터 연기에 푹 빠지게 됩니다.


■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시작 된 극단 생활

그리하여 광남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진학 보다는 극단으로 들어가 연극배우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죠. 그렇게 1992년에 시작된 극단 생활. 처음에는 연기는 커녕 1년간 죽도록 청소만해오다가 선배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때 선배들이 "왜 인상만 쓰고 있냐"라고 묻자마자 설움이 복받쳐 울음을 터트리게 됩니다.

그러자 이때 선배들은 연극 연기 지침서라고 불리는 백세개의 '모놀로그'를 곽도원에게 추천해주면서 연기 연습을 해봐라고 말했고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연기 연습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연기 연습을 시작하고나서 첫 무대에 오르게 되었는데 막상 무대에 선 모습은 어색했고 발연기까지 보인탓에 무대에 내려오자마자 또 다시 울음을 터트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선배가 아이들 앞에서 연기를 해보면 편하게 무대에 적응할 수 있다며 아동극을 해보라는 제안과 함께 아동극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는 아동극을 하면서 많은 부분들을 배우게 되는데요.


아동극을 하고 있던 어느날 객석에 달랑 세 명만의 가족만이 있었지만 꿋꿋이 스머프를 연기를 이어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공연 도중 한 명씩 차례대로 나가 결국 객석이 텅 비고 말죠. 그리하여 결국 배우들도 힘이 빠져 분장실로 복귀하게 되는데.


이때 나갔던 가족이 다시 돌아와서 "공연 끝났나요"라고 묻자 "어디까지 보셨죠?"라는 말과 함께 다시 그와 다른 배우들은 중단했었던 장면을 이어서 노래하고 연기를 하게 됩니다. 이런식으로 아동극을 하면서 그는 조금씩 성장하게 되나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 죄인이라고 불리는 이유

바로 부모님에게는 효도 한 번 한적없는 그저 죄인이였기 때문이죠. 그이유는 부모님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어려운 집안이였지만 그는 그저 본인이 좋아하는 연극에 미쳐 관객들을 웃고 즐겁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했기 때문입니다.


예술 정신 운운하면서 매일 술이나 마셨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용돈 한 번 드려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부모님 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던 연기에 매달려 아동극을 한지 4~5년이 될 무렵.


어머니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결국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리곤 그는 효도 한 번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더 이상은 연기를 할 수가 없어 연기를 포기하고 꿈이 없어지자 내일 뭐 할지를 몰라 양말을 팔로 다니며 여기저기 방황을 하게 되는데요.


그렇지만 결국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연기 포기를 했던 자신이 창피하여 무대에 서지는 못하고 조명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던 중 27살 때 경남 밀양의 '연희단 거리패' 워크숍 공고를 보게 됩니다.


그리곤 바로 밀양으로 내려가 '연희단 거리패'에서 무대에 서는 법, 걷는 법, 말하는 법 외에 모든 연기에 대한 것을 제대로 배우게 되는데 이때 '연희단 거리패'는 밀양의 폐학교 건물을 재건축하여 극장으로 만들어졌었고 여기서 7년 동안 오로직 연극만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환경을 매우 열악했다고 하는데 20명이 고작 만 이천원으로 하루 식비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활고를 겪으면서 이시기에 그는 고졸에다가 자격증 같은 것도 하나 없는 상황에 내일은 뭐하고 앞으로는 뭐 먹고 살지라는 생각에 건물에 철근을 까는 막도농 일을 6개월간 하기도 하죠.

(추후 그가 일했던 건물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무대 인사를 했던 건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렇지만 이윤택의 눈 밖에 나 극단에서 내쫓기게 되었고 다른 극단에서도 연극을 할 수가 없는 처지가 되어 이를 비관하여 술만 먹으며 신세한탄만 하는 생활을 보내게 되었고 그나마 옆에 있던 여자친구 마저 그를 떠나게 됩니다.


■ 쌓아왔던 연기력이 드디여 빛을 발휘하는 순간

그리곤 연극판에 복수하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성공하는 길 밖에 없다고 느껴 이를 계기로 그는 밀양에서 충무로로 올라가 '연희단 거리패' 출신 선배였던 오달수를 찾아가게 됩니다. 그리곤 오달수에게 "단편영화부터 시작해라"라는 조언을 받고 나서 이때부터 단편영화 부터 시작하게 되죠.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에서 숱한 단역을 맡아오더니 2008년에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시작으로 '마더', '핸드폰'처럼 대중적인 작품에서 단역을 맡았고 그 뒤로 2010년 영화 '황해' 그리고 2012년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확실한 두각을 나타나게 됩니다.


특히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진짜 검사같은 포스를 보여주면서 대중들에게 주목 받았으나 사실 검사 역할로 캐스팅 될 때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을 제외한 모두가 그의 캐스팅을 반대했었다고 하죠.

그러나 반대를 무릅쓰고 뛰어난 연기력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이후 영화 '곡성', '아수라', '강철비2', '남산의 부장들'...등등 하는 작품마다 대박을 터트리면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탑급 배우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곧 영화 '국제수사'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도 하죠.


다만 너무 악역연기를 했던 탓에 일상도 영화 속에 비춰지는 이미지처럼 무서울 것 같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실제 예능에서 보여진 모습은 정반대였습니다. 2016년 무한도전에 출연 이후 조금씩 친근감있는 모습을 보이더니 최근에는 '나혼자산다'를 통해 현재 살고 있는 제주도 집에서 자취 20년 차의 모습을 보이며 조금 더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 장소연의 고백 이후 연인사이가 되었으나 결별

한편 그는 배우 장소연의 고백에 이어 연인사이로 발전하면서 결혼을 준비한다는 기사까지 나왔을 정도로 새로운 커플이 탄생하는 줄 알았으나 두 사람은 아쉽게 결별을 하게 되었는데요. 과연 어떻게 만났고 무슨 이유로 결별 하게 되었을까?


가장 먼저 두 사람은 2015년 영화 '곡성'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추며 인연을 맺었고 그 뒤 장소연은 2015년 예능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현재 짝사랑 중"이라면서 "난 좋아하면 다 얘기하는 스타일이라 그 남자도 내가 좋아하는 걸 알고 있다.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장소연의 짝사랑 상대가 곽도원인에 알려졌고 이후 그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면서 2015년에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후 영화계 대표 커플로 화기 애애한 모습을 보였으며 곽도원은 1974년생, 장소연은 1980년 생으로 두 사람 모두 혼기가 꽉 찬 나이가 있다보니 결혼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반응도 나오곤 했습니다.


더 나아가 영화 '곡성'이 칸 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함께 칸에 가기도 하는 둥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두 사람은 아쉽게도 서로 바쁜 스케줄로 인해 자주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되면서 연애 2년만인 2017년에 결별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본인이 연기하는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연기로 보답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는 곽도원. 여기까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